세이해피
누구의 발을 밟았는가 - 장자 본문
[출처 : 장자 쓸모 없는 나무도 쓸모가 있다 / 차경남 저 / 글라이더 출판]
만일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낯선 사람의 발을 밟으면
그는 정중하게 사과하고
설명을 한다.
- 이곳은 정말 엄청나게 붐비는군요!
만일 형이
동생의 발을 밟으면
그는 "미안!"이라고 말한다.
그것으로 끝이다.
만일 부모가
자기 자식의 발을 밟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최고의 예절은
모든 형식으로부터 자유롭다.
완전한 외로움은
모든 물질로부터 자유롭다.
완전한 지혜는
계획하지 않는다.
완전한 사랑은
과시하지 않는다.
완전한 믿음은
금(金)을 저당잡지 않는다.
인간은 반어적인 동물이다. 그의 말과 행동 사이에는 언행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반가운 친구를 만났을 때는 씩 한 번 웃고 마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꼭 악수를 하면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예절이라는 것의 실체다.
우리의 본심은 딴 데 가 있고 다만 예절로 그 본심을 가리는 것이다. 유교적 관혼상제의 지배를 아직 받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다소 코믹하기까지 하다. 상주는 곡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억지로 곡을 해보지만 슬픔이 배어 있지 않는 마른 곡소리는 리듬도 민망하게 허공을 맴돈다.
그래도 상주는 나중에 부모가 죽었는데 자식이 곡도 안하더라는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문상객들이 조문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성실하게 마른 곡을 한다.
유교는 예악을 중시하지만 거기에 본심이 빠지면 그것을 공허한 형식주의로 흐르고 만다. 중요한 것은 본심이다.
장자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인이고 예인데, 유교는 남과 나를 구별해놓은 다음 새삼스럽게 소원해진 그 관계를 매꿔볼 요량으로 인과 예를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았을 때는 얼른 사과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발을 밟으면 사과하지 않는다. 남의 발을 밟았을 때는 그 아픔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얼른 말로라도 그 아픔을 보상해줘야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발을 밟으면 밟힌 자식의 발보다 자신의 마음이 몇 배 더 쓰리고 아파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심은 눈빛 하나만으로도 전달된다. 거기에 구구절절 말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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